목마에 귀신들린 새끼

© 지인 연성교환

---

   가족들과 놀이공원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인가. 치에리는 평소보다 화려한 색감의 치맛자락을 손끝으로 집은 채로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는데 한참이나 졸라도 안 통하던 ‘데이트’ 제안을 단박에 수락하게 만드는 방법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치에리는 순간 아마히코의 낯에 스쳤던 표정을 떠올리며 거울에 바짝 붙었다. 뭐, 아무렴 어때! 아마히코 씨가 함께 가 준다고 하는데. 이걸로 첫 데이트인가~ 치에리는 머리카락을 다듬곤 방문을 기세 좋게 열어젖혔다. 첫 데이트가 성공이면 반은 온 거라고 말하지들 않던가? 치에리의 연애 사정도 시원스럽게 열리는 이 방문처럼, 활짝 열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보통 데이트 상대에게 목마 제안을 하진 않지 않나?

   그로부터 정확히 2시간 37분 후. 치에리는 놀이공원 구석에 위치한 벤치에 앉은 채로 속으로 한탄했다. 아아, 안 돼. 눈깔 돌아간다. 예쁘게 꾸민 보람이 없어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치에리는 손에 들린 츄러스 를 거칠게 물어뜯으려다 말고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먹었다. 다음 코스 는 범퍼카가 어떠신가요? 정중한 말투는 치에리의 서방님답다, 라고 말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치에리는 절로 네에...♥ 하는 대답이 튀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마히코 씨!”
   “네, 치에리 씨?”
   “어린애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온 게 아니잖아요?!”
   아까부터 찰칵찰칵. 그 카메라는 뭐예요? 같이 타야 의미가 있는 건데! 애 데려온 부모처럼 서서 사진이나 찍어주고! 웃어보세요, 치에리 씨는 또 뭐예요? 불만이 우다다 튀어나왔다. 아마히코의 왼손을 차지하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쩌렁쩌렁한 울림에 툭,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눈물까지 맺힌 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치에리는 킁, 하고 코를 들이 마신 후 아마히코를 노려봤다.

   “아니었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치에리 씨가 가족과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멋대로 짐작해버렸어요. 차분한 사과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고함소리.

   “그럼 지금부터 제대로 에스코트하세요!!!!!!”

   뒤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아마히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하핫, 소리 내어 웃었다. 지명 감사합니다. 그럼. 마치 무도회에서 춤 신청을 받는 기분. 이건 나쁘지 않았다. 치에리는 내밀어진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으면서 뚱해진 얼굴로도 예쁘게 보이는 법을 생각했다. 새빨개진 눈가는 어쩔 수 없었지만.

   목마가 싫다면 회전목마는 어떠신가요?

   는 무슨. 목마의 봉을 붙들고 폴 댄스를 시원하게 갈겨준 탓에 사이좋게 쫓겨난 후 치에리는 생각했다. 첫 데이트의 성공은 연애 사업의 성공? 그런 거라면 끝장이었다. 제대로 컨텐츠를 제공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변명 아닌 변명에 치에리가 눈을 홉떴다.

   “아마히코 씨는 데이트 해본 적 없어요?!”
   “아무래도 있습니다만...”
   “있다고?”

   개팰 뻔 했네. 치에리는 바르르 떨리는 주먹을 진정시켰다. 서른이면 보통 좋은 집안의 처녀랑 선 정도는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되는 듯도 싶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있으면 이런 게 데이트가 아니란 것쯤은...!!”

   “치에리 씨.”
   구두가 조금 작았던 모양이에요. 아마히코의 목소리에 치에리의 시선이 뒤늦게 자신의 발치에 닿았다.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아마히코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치에리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 이건 좀 연인 같을지도...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안 되겠네요. 한층 심각해진 아마히코가 중얼거렸다. 응응, 이다음은 역시 어부바 이벤트지? 꺄, 처음부터 진도가 너무...!! 가슴 닿는다고 백프로!

   “역시 목마를 태워드려야겠어요.”